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고위험·고수익의 특성을 가진다. 그 반대 급부로 손실 위험도 높기 때문에, 투자금 회수 보장을 약속하는 등 매력적인 조건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약정은 기업의 자본적 기초를 위태롭게 하거나, 다른 주주들과의 형평성을 침해하여 법적 분쟁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상법상 ‘주주평등의 원칙’은 특정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는 약정의 유효성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주주평등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주주와 회사 전체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 약정은 유효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러나 투자계약상 투자금 반환 약정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여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 PE/VC 시장의 뜨거운 감자, 투자금 반환 약정의 유효성은?
이러한 맥락에서 2023년 선고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3. 7. 27. 선고 2022다290778 판결)은, 기업 투자 과정에서 체결된 투자금 반환 약정의 효력과 주주평등의 원칙 적용 범위에 대해 중요한 법리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판결은 회사가 특정 주주에게 투자금 전액을 보전하는 약정을 체결한 경우, 주주평등의 원칙 위반 여부를 판단함과 동시에 이 원칙이 주주와 회사의 관계뿐만 아니라 주주 개인 또는 이사 개인과의 법률관계에도 적용되는지에 관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 사건의 원고들은 투자자로서 피고 회사(피고 1)가 발행하는 종류주식을 인수했다. 이들은, 피고 회사가 연구·개발 중인 특정 제품이 일정 기한 내에 국가기관에 등록되지 못할 경우 신주인수계약을 무효로 하고, 피고 회사 및 그 대표자(피고 2), 연구개발 책임자(피고 3) 등이 투자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의 투자계약을 체결했다.
피고 2는 회사의 대표자이자 대주주로서 투자계약에 참여했고, 피고 3은 주주이자 연구개발 담당자로서 피고 2 및 회사가 부담하는 의무에 대해 연대보증인으로 참여했다. 이후 피고 회사는 약정 기한 내에 제품 등록을 마치지 못했고, 이에 원고들은 이 투자금 반환 약정을 근거로 세 피고에게 투자금 전액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 “투자금 돌려줄게요”는 불공정?…대법, 주주평등 원칙 재확인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다. 먼저, 이 투자금 반환 약정이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어 무효인지 여부다. 두 번째는 만약 회사와의 관계에서 이 약정이 무효라면, 대주주이자 대표자인 피고 2, 주주이자 연구개발 책임자인 피고 3 등 개인과의 관계에서도 주주평등 원칙이 적용되어 무효가 되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주주는 자신이 보유한 주식 수에 따라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주평등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반하여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는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라고 판단했다.
특히 이 사건 투자금 반환 약정처럼, 회사가 신주 인수 주주에게 신주 인수대금 전액을 보전해주는 약정은 상법상 배당 외에 다른 주주들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별도의 수익을 지급하는 것으로 다. 이는 “해당 주주에게만 투하자본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며, 다른 주주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어 무효라는 게 대법원의 결론이었다.
또한 대법원은, 주주 전원의 동의가 있더라도 이러한 약정은 회사의 자본적 기초를 위협하고 주주의 본질적 책임을 벗어나게 하므로, 상법 등 강행법규에 위배되어 예외적으로도 효력이 없다고 봤다. 이로 인해 회사와의 관계에서 해당 약정은 무효라는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 주주평등의 원칙, 개인에게는 ‘직접 적용’ 안 돼
다만 대법원은, 주주평등의 원칙은 회사와 주주 간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원칙이지, 주주와 회사 외 개인(다른 주주나 이사 등) 사이의 법률관계에는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의 투자계약은 원고들과 피고 회사 간의 계약 부분과, 원고들과 피고 2·피고 3 사이의 계약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 설령 회사와의 관계에서 이 약정이 주주평등 원칙에 반해 무효라고 하더라도, 개인과의 관계에서 당연히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원심은 피고 2가 부담하는 투자금 반환 의무가 회사의 채무에 부종하는 연대보증인지, 독립된 연대채무인지 여부 등을 따져보고, 피고 2와 3의 의무 유효 여부를 심리했어야 한다. 그러나 원심은 주주평등의 원칙이 개인과의 관계에도 직접 적용된다는 전제 아래 약정의 효력을 부정했다. 이에 대법원은 이 부분을 다시 심리하도록 원심에 환송했다.
■ 투자자 사전 동의권에 관한 대법원 판결과의 공통점
주주평등의 원칙과 관련된 또 다른 대법원 판례(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1다293213)는, 투자계약상 회사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투자자 사전 동의권의 유효성에 관한 것이었다. 이 판결은, 특정 주주에게 차등적 권한을 부여하더라도 정당화될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주주평등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유효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은 앞서 본 투자금 반환 약정 사건과 마찬가지로, 자본 회수를 절대 보장하는 금전 지급 약정은 강행법규에 위배되어 무효라는 공통된 법리를 확인한 것이다. 이는 회사 자본의 충실과 다른 주주의 권리 보호를 위한 중요한 원칙으로 작용한다. 주주 전원의 동의가 있더라도 회사의 자본적 기초를 위협하고 주주의 본질적 책임을 무력화한다면, 그러한 약정은 법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
■ 약정은 깨져도 책임은 남는다?…‘대표자 개인 책임’ 따져야
이 판결은, 회사가 주주에게 투하자본의 절대적 회수를 보장하는 약정은 주주평등 원칙과 강행법규에 위배되어 무효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는 기업 자본의 건전성을 보호하고, 주주 간 공평한 대우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주주평등 원칙의 적용 범위를 회사와 주주 사이의 관계로 한정함으로써, 회사 외 개인(대표자나 다른 주주)과의 약정에 대해선 적용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이를 통해 투자자가 회사의 개인들을 상대로 투자금 회수를 담보할 여지를 남긴 셈이다.
이러한 두 판결은 투자계약 작성 시, 약정 당사자와 구체적인 약정 내용의 명확성을 강조한다. 투자자는 회사 외에 누가 계약 당사자인지, 어떤 조건에서 얼마를 어떻게 회수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주주평등의 원칙이나 강행규정에 저촉되지 않도록 계약 구조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고, 업무집행사원(GP)인 유한책임사원(LP)로부터 책임 추궁을 받는 상황을 방지하는 데도 중요하다. 투자금을 유치하는 회사 입장에서도, 자본의 충실을 도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방향으로 투자계약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
■ 이제는 ‘투자계약 설계의 시대’…PE/VC 분쟁 줄이려면
이러한 판례의 축적은 PE/VC 시장에서 법적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투자자와 기업이 이해관계를 보다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조정한 계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하여, 건전한 투자 환경 조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이번 대법원 판결이 투자금 반환 성격을 가진 모든 약정을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본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계약 내용, 발행주식의 종류, 투자금 회수 조건 및 방식, 회사의 재무 상태 등에 따라 유효성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각 사안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투자계약 체결 시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신중히 약정을 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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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LAW&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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