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AI 이니셔티브, 미국과의 MOU, 그리고 우리의 과제
11월 1일, 경주에서 막을 내린 APEC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APEC 차원의 'AI Initiative'를 추진하겠다고 CEO Summit에서 연설했습니다. AI 혁신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는 '모두를 위한 AI' 비전제시와 함께 AI가 공급망 협력의 핵심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AI를 바이오, 의료 등 미래핵심산업과 결합,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고 APEC 역내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끄는 전략적 도구로 보자는 구상입니다. 그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이 그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AI 이니셔티브'에 담았습니다.
한편, 미국과는 APEC 기간중인 10월 29일, '한미 기술번영 (ROK-U.S. Technology Prosperity Deal, TPD)' 양해각서 (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체결했습니다. 이 MOU는 AI를 비롯한 양자역학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협력을 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넘어선 '기술 동맹' 수준으로 격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하루 먼저 체결한 미일간의 기술번영 협력각서 (MOC; Memorandum of Cooperation)와 내용은 유사하고 양자 모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AI가 현재 국가경제와 글로벌시장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위상을 극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AI 기술의 전 분야(full stack)를 미국 주도로 수출하는 데 양국이 협력한다는 내용이 동일하게 들어가 있지만, 일본과 달리 우리는 '아시아에서의 AI 생태계 (ecosystem)를 미국과 공동 구축하자'는 합의 내용이 들어감으로써 중국을 견제하면서 미국의 AI 글로벌패권 전략을 강화하려는 그림 속에서의 대한민국 AI 위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편, 미일간 협력각서는 AI 기술의 전 분야를 수출하는데 협력한다는 총론에 덧붙여 양해각서와 달리 성격상 공급망 체인에서의 복원력 협력과 보안 등과 같은 구체적 협력 분야도 예시하고 있음으로써 그동안 일본 정부와 AI업계가 미국과 협력적 소통이 많았다는 점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하에서는 'APEC AI 이니셔티브'로 상징되는 이재명 정부의 글로벌 AI전략과 이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미국과의 MOU를 중심으로 우리에 대한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AI Initiative
'AI 이니셔티브'는 모든 APEC 회원이 AI 전환 과정에 참여하고 AI 기술 발전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 AI 혁신을 통한 경제성장 촉진 ▲ 역량 강화 및 AI 혜택 확산 ▲ AI 인프라 투자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되, "APEC 최초의 명문화된 AI 공동비전이자 미국과 중국이 모두 참여한 AI에 관한 최초의 정상급 합의문"이라고 대통령실은 그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이재명 정부의 AI정책의 핵심 키워드인 '모두를 위한 AI'와 'AI 3대강국'이라는 2개 국정 목표를 모두 담아 'AI 기본사회 구현'과 '아시아·태평양 AI 센터' 설립 등 정부의 AI 기본 정책과 실질적 AI 협력 방안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AI 이니셔티브이고 이재명 정부 AI정책의 글로벌 버전인 셈입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 기구로 '아시아-태평양 AI센터'를 대통령이 제안한 것입니다.
다만 CEO Summit에서 제안한 AI 이니셔티브는 AI를 기업혁신과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정의하고 우리가 추진하는 'AI 고속도로' 구축계획을 통해 AI를 활용하기 쉬운 인프라 환경을 강조하고 있는데 반해, 국가정상회의에서 제안한 AI 이니셔티브는 국가간 공동대응과 질서 확립을 위해 AI가 일부 국가나 계층에만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 중심의 포용적 AI가 되도록 대한민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점을 더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Ⅱ. 한미 MOU
1. 트럼프 정부들어 처음으로 체결된 '기술번영 MOU'는 양국간 협력분야를 명시하면서 'AI 응용 및 혁신 가속화(Accelerating AI Application and Innovation)' 부분에서 AI 정책 프레임워크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AI 전 분야 기술 수출 협력을 포함하여 아시아 전역에 걸쳐 공유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협력사항으로 (Exploring collaboration on AI export deals across Asia and beyond to drive the adoption of a shared AI ecosystem in the region)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국가간 의례적 기술협력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을 타겟으로 AI 기술의 전분야 (full-stack)를 수출, 한미 공동생태계 (ecosystem)를 조성하겠다는 양국간 전략적 의도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중간 AI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글로벌 시장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이 기술동맹국으로서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는 아시아 지역 내 신뢰할 수 있는 (trusted) AI 기술 공급망과 생태계 구축을 주도하겠다는 메시지입니다
이를 위한 실행 수단으로 선택한 'AI기술의 전 분야 (full-stack)' 수출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담긴 지난 7월의 미국 'AI 실행계획' (Action Plan)에서 이미 잘 드러난 바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미국 중심의 AI 글로벌 동맹을 구축하고 이들로 하여금 미국의 'full stack' 수출패키지 (하드웨어, 모델,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그리고 표준의 5가지를 열거)에 동참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고, 미국 중심의 글로벌 AI 생태계 구축시 동맹국으로서 주저 말고 참여하라는 트럼프식 사전 안내장이었습니다.
이제 한국과 아시아 AI 시장을 공동으로 개척하자는 정식 초대장이 양해각서를 통해 APEC 기간중 구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이재명 정부의 AI 3대 강국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외 나침반이 마련된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AI의 채택과 확산을 예시하면서 미일 협력각서 (MOC)는 협력의 집중분야로 R&D를 통한 과학, 산업, 사회분야를 예시하고 있고, 한미 양해각서 (MOU)는 이에 비해 과학, 첨단제조 (advanced manufacturing), 바이오, 기타 분야 등 더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R&D 협력을 수행할 구체적 기관으로 미일 MOC에서는 미국의 National Science Foundation, 일본의 Science and Technology Agency 등이 언급되고 있고, 한미 MOU에서는 미국의 National Science Foundation, 우리의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등이 협력채널로 명시되고 있습니다.
한편, 양자 모두 ‘AI 정책틀' (policy framework)을 협력분야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한미MOU가 MOU 자체의 특성상 혁신친화적 AI 정책틀을 개발 (developing)하는데 긴밀히 협조하고, AI 채택을 지원하기 위한 혁신친화적 정책틀을 옹호하는 (championing) 정도로만 언급을 하고 있는데 반해, 미일간 MOC는 혁신친화적 정책틀을 '심화시키는' (advancing) 단계의 협력 표현도 쓰고 있습니다.
표준 역시 동일하게 미국의 Center for AI Standards and Innovation, 우리의 AI Safety Institute, 일본의 AI Safety Institute 가 양국간 협력기관으로 명시되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와의 MOU에서는 미국의 관심사를 반영, 양국이 혁신적이고 기술기업들에 대한 장애요인을 제거하고 유리한 디지털응용플랫폼 (digital application platforms) 환경을 확보하는데 협력한다는 내용이 발견되는 반면, 일본과의 MOC에서는 AI 성능과 응용에 필수적인 고성능컴퓨팅 등의 기본 인프라에 대한 협력을 심화한다는 내용이 차별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미국과의 협력분야로 한미 MOU에서 특별히 언급된 ‘AI 사용이 가능한 데이터셋 (dataset) 개발’ (AI-ready datasets)은 아시아 수출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실행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첨단제조업, 의료산업등에서의 산업 경쟁력을 AI 시대에 고품질 데이터 확보와 훈련을 통해 더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AI 모델개발, 훈련, 상용화에 필수적인 고품질의 데이터셋을 한국과 공동으로 개발하거나 표준을 구축하기 위한 미국측의 계산과 의지 역시 담겨진 제안인만큼 우리가 데이터 주권이 담긴 전략적 자주성을 갖고 추진하면서 동시에 보조를 맞춰야만 하는 부분인 셈입니다.
Ⅲ. 시사점
2년 전인 2023년 8월, 바이든 대통령때 한미일 3국 정상이 '캠프 데이비드 원칙(Camp David Principles)'과 '캠프 데이비드 정신(Spirit of Camp David)' 공동 성명을 통해 AI를 포함한 핵심 기술 분야에서의 3국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한미 양해각서는 트럼프 시대에 맞게 국가간 기술협력의 의미를 보다 시장중심적으로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안전하고 보안성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AI를 위해 AI 가버넌스 수립과 국제표준 확립 등 3국간 국제협력을 강화하자는 2년전의 캠프 데이비드의 선언은 ‘민주적 가치(democratic value)'를 공유하는 바탕위에 미국이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affirm our respective efforts to help shape international governance on AI and ensure safe, secure, and trustworthy AI, in line with our shared democratic values and as the basis for international discussions on frontier AI systems")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AI 3국 기술동맹이라는 정치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즉 중국이 AI 기술을 독점하거나 권위주의적 통제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AI 기술패권을 차지하는 것을 견제하고자 제안했기에 개방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AI 생태계를 3국이 주도하자는 의도를 미국 바이든 정부는 숨기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번의 한미 MOU는 AI를 비롯한 양자역학 등의 첨단기술분야에서 트럼프시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기술동맹의 내용을 더욱 구체화시켜 아시아 AI 시장을 중국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 한국을 파트너로 함께 시장공략을 하자고 한 것이기 때문에 내년 워싱톤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한 한미과학기술공동위원회 이전에라도 우리가 더 세밀하고 다각적으로 관련 세부 정책과 제도들을 다듬으면서 미국과 소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시아 AI 시장을 함께 공략하자는 트럼프의 AI 글로벌 수출전략에 협조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AI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향후 미국을 포함한 더 많은 글로벌 협력채널, 우리 내부의 전문시스템 구축 등을 다듬어야 할 필요성이 시급히 제기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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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자로 체결한 한미간 MOU에서 AI 기술의 모든 분야를 수출하기 위한 공동협력을 밝히면서 |